작성일 : 13-06-03 15:52
고경희 제주수산 사장님의 장사 철학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837  
고경희 사장이 제주동문시장에 위치한 자신의 점포에서 싱싱한 수산물을 들어 보이고 있다.
고 사장은 원산지와 품질을 절대로 속이지 않는다는 장사 철학으로 매달 1억원 넘게 팔고 있다.
새벽 5시. 제주항은 이 시간 무렵이면 어김없이 갓 잡아 올린 수산물 경매로 시끌벅적하다.
요즘 같은 초여름엔 한창 물이 오른 자리돔이, 가을엔 갈치나 멸치·고등어가, 겨울엔 방어나 옥돔 같은
제철 생선이 거래된다. 제주항에서 2㎞ 남짓 떨어진 동문시장에서 40년 넘게 생선가게를 하는
제주수산 고경희(58) 사장은 제주항 경매장의 단골이다. 특히 그는 경매에서 항상 품질이 뛰어나고
가장 신선한 생선들만 골라내 ‘수산물 박사’로 통한다. 고 사장은 “좋은 생선을 고르려면 눈이 밝아야
한다”며 “간간이 낮술은 해도 새벽시장에 나가려고 저녁엔 술도 안 마신다”고 말했다.
그는 한 달에 두 번 경매가 쉬는 날을 제외하곤 40년 넘게 이런 생활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생 때 생선가게에서 자전거 배달일을 시작한 이후 월급사장 자리까지 올랐다가 1997년부터 직접 차린
제주수산을 운영하고 있다. 고 사장은 점원일 때나 주인이 된 지금이나 동문시장 내 107개 생선가게 중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걸로 유명하다. 동문시장의 14평(약 46.3㎡) 남짓한 가게에서 매달 1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고 사장을 지난달 30일 만났다.

 “난 40년 넘게 생선을 팔면서 ‘마누라는 속여도 손님한테 품질을 속이면 안 된다’는 신조를 지켜왔다
돈 좀 쉽게 벌자고 저울이나 원산지를 속이고 며칠 지난 생선을 신선한 것처럼 파는 사람이 간혹 있는 것 같더라.
손님이 한두 번은 속을지 몰라도 결국 다 알게 된다. 장사꾼이 자기 양심을 팔아선 큰돈을 벌 수 없다.
난 주변에 장사하는 친구들한테도 ‘저울질 속이면 3대가 줄봉사 난다’는 말을 자주 한다.”

 똑같은 시장 안에서 남들보다 더 많이 파는 비결을 묻는 질문에 돌아온 답이었다. 그의 옆에서 듣고 있던 부인
김인자(59)씨는 “싱싱해서 팔 수 있는 생선도 저 사람 고집 때문에 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부부싸움도 자주 했지만 신선도나 품질을 고수하다 보니 가까운 데는 물론이고 먼 곳에 있는 손님도
우리 집 생선은 묻지도 않고 사 가는 것 같다”고 거들었다.

 고 사장은 “내가 장사하면서 저울이나 원산지 속여가며 돈 벌어 집도 짓고 차도 산 사람들을 몇 번 보긴 했다.
하지만 결국 자식들이 그 돈을 다 갖다 날리더라. 남 속여서 쉽게 번 돈은 오래 못 가는 것 같더라”며 웃었다.
고 사장의 가게는 시장을 직접 찾는 사람도 있지만 전국의 대형 식당이나 개인들이 주고객이다.
고 사장은 수산물의 생명은 신선도라며 제주는 2시간 내 배달, 다른 지역은 당일 택배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또 배달상품은 포장 전 본인이 직접 신선도를 점검한다. 이 같은 엄격한 품질관리로 제주시내 호텔이나 유명 횟집,
경주 보문단지의 호텔 등을 우량고객으로 확보했다.


제주수산 고경희 사장의 거칠어진 손을 그는 스스로 ‘더덕 손’이라 부른다. 항상 물에 손을 넣고 지내서 얻은
‘훈장’이다. 전국에 택배로 보내는 자연산 해삼과 전복. 제주 해녀들이 물질해 걷어 올린 싱싱한 수산물들이다.
“내 자랑 같지만 난 수산물 박사라는 소리가 제일 듣기 좋다. 내가 어렸을 때 대학 가는 친구들을 보며 내 처지가
너무 서러워 밤새 울기도 했다. 하지만 난 그때 비록 대학은 못 가도 수산물 박사가 되자고 혼잣속으로 다짐했다.
대학 문턱에도 못 가봤지만 농담이라도 박사로 불러주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고 사장은 40년 이상 체득한 ‘상인 철학’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장사하는 사람은 자기가 취급하는 상품뿐 아니라 주변의 시장 상황에 항상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흔히 자기가 취급하는 상품만 알면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래서는 딱 거기까지다.
새로운 사업을 할 수가 없다. 매출도 늘릴 수 없다. 장사꾼은 항상 눈과 귀를 열어두고 공부를 해야 더 좋은 물건을
떼 올 수도 있고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도 잡을 수 있다.”

 그의 말대로 고 사장은 제주 서쪽의 한경면에서 홀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
중학생 때부터 생계를 책임져야 돼 생선가게에서 짐자전거로 배달일을 시작했다. 생선가게 점원으로 일할 때는
수산물 경매사 자격증을 딸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경매에서 최고 품질의 생선을 직접 구매할 방법을 찾다가
경매사 자격증까지 딴 것이다. 또 최고 품질의 수산물을 찾기 위해 제주로 들어오는 물량에만 만족하지 않고
직접 산지를 돌기도 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남 여수에서 고등어 진공포장법이 개발됐을 때도 한걸음에 달려갔고,
전복 산지로 유명한 전남 완도의 전복양식장과 멸치 산지인 경남 통영의 멸치공장을 찾아 일하면서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또 일본이나 필리핀 등을 찾아 광어나 우럭 등의 선진양식법과 새우 조리법 등을 견학하기도 했다.
고 사장은 “장사꾼이 돈만 벌면 됐지 공부는 무슨 공부냐고 하는 사람이 많다”며 “하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다.
자꾸 다른 사람들과 현장을 찾아다니며 배워야 제일 좋은 물건을 골라 팔 수 있다”고 말했다.

 고 사장은 자신의 손을 ‘더덕 손’으로 부른다. 항상 수족관에 들어 있는 생선을 만지다 보니 손의 마디마디가
물에 붇고 군데군데 흰 허물이 벗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내 손이 껍질을 벗겨 물속에 담가 불려놓은 더덕처럼
부풀어 있다고 해서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손님이 올 때마다 주저 않고 수족관에 손을 집어넣어 고기를 꺼내 보이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라며
“처음엔 남들한테 창피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손님들한테 친절했다는 ‘훈장’ 같은 것 아니겠느냐”며 웃었다.


 고 사장은 “장사를 막 시작하는 분들이 흔히 돈 잘 버는 법을 묻는데 내 답은 간단하다.
내 손님이든 남의 손님이든 친절해야 한다는 거다. 나는 손님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일어나 참 고맙다고 혼잣말을
하곤 한다”고 했다. 그는 “백화점 같은 데 가봐라. 옷 파는 사람이 신발 사는 손님한테 다 인사하지 않느냐.
‘오늘은 남의 손님이지만 내일은 내 손님이 된다’는 생각으로 모든 고객에게 친절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성실함도 그가 꼽은 상인의 중요 덕목이다.

 “직원이 한 명이든 백 명이든 주인부터 부지런해야 직원들도 움직인다. 장사하면서 주인이 나부터 편하자고
하는 가게치고 잘되는 곳을 못 봤다”고 말했다. 고 사장은 인터뷰 중간중간에도 가게 앞을 서성거리는 손님만 보면
달려나가 인사말부터 건넸고 팔을 걷어붙이고 수족관 깊숙이서 싱싱한 해삼이나 멍게를 꺼내 들어 보였다.


고경희 사장의 장사 철학

-손님한테 상품을 팔 때는 딱 그만큼의 가격만 받고 팔아야 한다.
  돈 좀 빨리 쉽게 벌자고 저울이나 원산지·신선도 속여봐야 결국 손님은 다 안다.

-장사꾼은 좋은 물건을 보는 눈을 갖고 있어야 한다.
  취급하는 물건뿐 아니라 다른 것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좋은 물건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

-장사의 기본은 손님한테 정성을 다하는 거다.
  내 손님한테는 다 친절하다. 당장은 내 손님이 아니어도 친절하게 대해야 나중에 내 손님이 된다.

-가게 주인이 나 편하자고 해서는 장사가 안 된다.
  직원이 몇 명이든 주인이 부지런해야 직원도 움직인다.

출처 : 중앙일보('13.6.3)